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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다이어리

제목 꿈의 나라 이스라엘일 다녀오다 3
작성자 박시온 작성일 2011-08-25 11:55:06
Day 6 - 예루살렘 탐방, 그리고 이스라엘과의 작별

이스라엘도 이제 마지막인 아침이 밝았다. 나는 어느 때보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 아침을 맞았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그 하루가 건강한 법. 나는 여기 베들레헴 호텔의 시설이나 음식이 이스라엘서 최고급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아침을 먹고 난 후에 로비에서 파는 음료수를 마시며 베들레헴의 아침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 그리고 마지막 텔아비브까지 가는 먼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은 깨알같이 진행되었다.

첫 코스는 바로 호텔 옆에 위치한 목자들의 들판 교회였다. 베들레헴에서 거의 3일을 있었지만 이 교회가 우리 호텔 바로 옆에 있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교회가 작고 아담했는데 외형이나 담긴 뜻이나 역시 이스라엘의 교회는 뭔가가 달랐다. 원래 이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이곳은 양떼들을 치는 목자들의 들판이었다는데,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그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기념하여 세워지게 되었다.
그때는 밤이었을 것을 감안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이곳을 밤에 왔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지 상상해 보았다. 별이 빛나는 밤에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은 목동의 기분을 쉽게 이해했을 텐데 말이다

아침이 아름다운 베들레헴, 예수님의 탄생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곳이었다. 이제 떠나야 한다니 꽤 오래 정이 드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버스에 오르고 우리는 베들레헴과 작별을 고했다.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거쳐 하늘로 올라가야 하니 우리는 서둘러 떠날 수밖에 없었다.

버스를 타고 가며 이스라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곧 떠나야 하기도 한 곳이지만, 이 작은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어떤 것부터 풀어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제대로 보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전쟁, 종교, 유대인의 재력, 아픔의 역사... 이것들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구분을 지을 수는 없지만 모두 한 나라에 공존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 나라에 와서 괜시리 더 많은 문제만 안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예루살렘에 도착해 있었다. 머릿속의 문제들은 내버려두더라도 우선 여행지부터 둘러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나는 재빨리 내려 야드바셈 앞에 다다랐다. 야드바셈은 우리가 계속해서 둘러본 유적지나 교회와는 조금 다른 곳이었다. 야드바셈은 나치에 의해 죽어간 유대인들을 추모해서 만든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총수였던 히틀러는 반 유대적인 사상이 매우 강했고 홀로코스트를 자행,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이기에 이른다. 이때 유대인들은 아무 이유 없이 행해지는 무차별 학살에 무방비 상태였고, 6백만에 이르는 유대인이 사망하고 말았다.

야드바셈은 그들을 기억한다는 의미로 2005년 건립된 곳이다. 이곳에서는 죽어간 유대인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당시의 시대상과 나치의 참혹성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야드바셈에서는 비교적 현대적이고 깨끗한 외형을 먼저 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속은 이렇게 기쁘지 않았다. 우리가 박물관에 들어서자, 1900년대 초 유럽의 모습을 전시하는 전시관에 들어갔다. 비디오와 사진들을 통해 평화로운 유대인들과 유럽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잔인한 나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전시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강제로 재산을 뺏거나 차별하는 것부터 시작이 되다가 나치는 유대인들을 독가스실에 넣거나, 총살을 하는 등 갖가지 참혹한 방법으로 제거해 나간다. 마치 유대인들은 인간도 아닌 짐승인 것처럼 말이다.

히틀러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유대인들을 학살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유대인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나누어준 장본인이다. 다르게 보면 유대인들이 서로 힘을 합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구성하는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히틀러를 보든 유대인 쪽을 보든 결국 인간은 너무나도 상대적이고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죽음이 임박하자 자살하는 히틀러나 쫓겨 다니는 유대인이나. 인간이 어떤 짓을 하든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은 인간이다. 유대인들의 학살은 슬퍼할 일이지만 그 다음이 중요하지 않은가 싶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지고 그분에게 우리의 삶을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 세상에서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야드바셈 이후로 내가 예루살렘에서 가장 좋아했던 곳은 십자가의 길과 통곡의 벽이다. 십자가의 길은 골고다 언덕까지의 길을 말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가신 길이다. 현재 십자가의 길은 아랍인들의 시장과 가게로 붐비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나 카톨릭에서 중요한 현장이 아랍의 중심에 있어 무슬림으로 개종하라는 팻말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다. 지금은 예수님의 고난을 같이 느낄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우리는 편하게 만들어진 길을 걸었지만 예수님은 가시면류관과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길을 걸어가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받은 고통과 모욕은 내가 평생 받아도 모자랄 만큼의 양이었음이 분명하다. 십자가의 길, 즉 비아 돌로로사를 걷는 내내 마음이 그다지 편치 못했다.
날씨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단단히 괴롭혔다. 이스라엘에 일주일 동안 있었지만 구름이 해를 가린 적은 손에 꼽는다. 그 따가운 직사광선을 맞자니 뜨거워 죽을 맛이었지만 예수님은 이보다 더한 고통을 받으셨겠지 하는 마음이 들어 불평은 밖으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끄럽기만 했다.

골고다 언덕을 지나고 이제 예루살렘의 마지막인 통곡의 벽에 도착하게 되었다.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남은 벽 위에서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이 된 곳이다. 우리도 비록 유대인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기도했다.

처음에는 무슨 기도를 해야 할지 몰랐다. 어쨌거나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막상 앞에 서자 기도할 말이 떠올랐다. 나와 이스라엘, 그리고 모든 세상의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따라가게 해달라고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이스라엘에 와서 느낀 것이 있다면 그런 것도 있었다. 단순히 말씀이 실제로 역사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하물며 유대인도 완벽하지 않은데 그 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완벽하겠냐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겸손해지고 다른 이들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기도를 드렸다.

통곡의 벽을 지나자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텔아비브로 가서 마무리를 하면 우리의 이스라엘 여행은 이렇게 끝나기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정이 들어버린 것인지 지금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 지 상상이 안 갔다. 단지 또 올 수 있기를 바랄 뿐.

우리는 텔아비브로 가 저녁을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가이드분들과도 작별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구나 싶었다. 이곳에서 얻은 것은 너무나 많은데 돌아가는 것은 이렇게 피곤한 상태에서 맥없이 날아가는 게 허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는 점이다. 그 점을 유의한다면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스라엘을 계속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통해 유대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쓰실 나와 다른 꿈쟁이분들의 비전을 믿게 되었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나만의 감정, 마지막으로 말씀이 실제 장소로 나타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것들은 이스라엘에서만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그 어떤 장소보다 이스라엘을 그것들과 다르게 만들어준다.

멀어져 가는 텔아비브를 바라보며 속으로 나는 되뇌었다. 이 나라에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그 때는 나나 이스라엘이나 모두 하나님 안에서 변화했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성경과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은 그렇게 나와 작별인사를 했다. 쏟아지는 잠 속에 나는 잠이 들었고 반나절이 지나면 한국에 도착하겠지만 이스라엘은 내 마음에 언제까지나 남아있을 그런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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